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헬무트 쇤 (문단 편집) ===== [[1974 FIFA 월드컵 서독]] ===== [[1974 FIFA 월드컵 서독|자국에서 열린 1974년 월드컵]]에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서독]]은 개최국 자격으로 [[1974 FIFA 월드컵 서독/지역예선|지역 예선]]을 면제받았다. 그러나 이 시기에 서독은 약간의 변화를 겪어야 했다. 먼저 [[귄터 네처]]가 [[레알 마드리드 CF]]로 떠나고 [[UEFA 유로 1972|2년 전 유로]] 우승 멤버 중 일부는 기량이 떨어져 세대 교체가 필요했다. 본선에서 서독은 [[동독 축구 국가대표팀|동독]],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칠레]],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호주]]와 [[1974 FIFA 월드컵 서독/조별 리그 1조&2조#s-1|1조]]에 편성되었다. 무난히 2라운드에 진출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서독은 칠레와의 [[1974 FIFA 월드컵 서독/조별 리그 1조&2조#s-1.1|1차전]]에서 [[엘리아스 피게로아]]의 대활약때문에 1대0으로 간신히 이겼고 [[1974 FIFA 월드컵 서독/조별 리그 1조&2조#s-1.6|최종전]]에서는 동독에게 일격을 얻어맞았다. 쇤 감독은 동독에게 패배하였다는 이유로 대회 중간에 TV쇼에 나와 서독 국민들에게 사과를 해야 했다(...). 쇤은 밖에서는 사과를 했지만 안으로는 선수들의 기강을 다잡았다. 최선을 다해 뛰지 않는 선수들이 있다며 강하게 선수단에 질책했고 대표팀 [[주장]] [[프란츠 베켄바워]]는 그에 동조했다. 그 결과 동독전에서 뛰었던 [[울리 회네스]], [[위르겐 그라보프스키]], [[하인츠 플로헤]], [[베른트 쿨만]]이 [[1974 FIFA 월드컵 서독/8강 이후#s-2|2라운드]]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유고슬라비아]]전에서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회네스는 스웨덴전부터 다시 서독의 스쿼드에서 중용되었고 쿨만은 스웨덴전에 교체 투입은 되었다.] > 월드컵 우승의 기회는 동독에 패한 후에야 찾아왔습니다. 쇤은 이 게임을 모욕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는 팀이 동독에 진 것에 대해 분개했고 다음 날 우리에게 아예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훈계하거나 처벌을 내리는 대신 이런 식으로 깊은 실망감을 느끼게 한 것은 선수단 모두를 극도로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게 그의 방식이었죠. 감독은 큰 소리로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한 것이 아니라 기분을 상하게 함으로써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마치 선수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실망시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팀 전체가 부끄러웠죠. 그런 다음 베켄바워는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유고슬라비아와의 중간 라운드에서 선발 라인업에서 회네스를 교체해야 한다고 쇤에게 투표했습니다. 대신 [[라이너 본호프|본호프]], [[디터 헤어초크|헤어초크]] 및 [[헤르베르트 비머|비머]]가 선발 명단에 합류했습니다. 나중에 베켄바워가 이때 쇤을 해임시키려했다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기록되었는데 그건 넌센스예요. 쇤은 팀을 꾸렸지만 당시의 다른 감독들과 달리 논쟁을 저울질하고 다른 의견들을 수용했습니다. >---- > [[베른트 횔첸바인]] 이 월드컵은 8강에서 [[토너먼트]]가 아닌 다시 2개조로 나뉘어 경기를 치렀고 조 1위팀이 결승, 조 2위팀이 [[3위 결정전]]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렇게 조별 리그를 두 번 치르는 방식은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1982년 대회]]까지 유지된다.] 서독은 2라운드 B조에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폴란드]],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스웨덴]], 유고슬라비아와 편성이 되었다. 서독은 3전 전승, 조 1위로 8년 만에 월드컵 결승전에 다시 진출했다. [[1974 FIFA 월드컵 서독/8강 이후#s-4|결승전]] 상대는 토털 풋볼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네덜란드]]. 이 대결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데 토털 풋볼의 창시자 [[리누스 미헬스|리뉘스 미헐스]]와 리베로 시스템을 극대화 한 헬무트 쇤이라는 극과극 전술 성향의 감독 대결과 이 두 감독의 전술 철학을 실제로 구현해낸 [[요한 크루이프]]와 [[프란츠 베켄바워]]의 맞대결이었기 때문이다. 경기가 열릴 당시에는 최고의 선수 요한 크루이프가 이끄는 네덜란드의 우승을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정작 결승전에서 요한 크루이프는 전반에 [[페널티 킥]]을 얻어낸 것을 빼면 [[베르티 포크츠]]에게 완벽히 막혀 버렸다.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베크]]는 [[로프 렌센브링크]]를, [[라이너 본호프]]는 [[빔 판하네험]]을 상대했다. 반면 서독은 프란츠 베켄바워의 지휘아래 네덜란드를 상대로 2대1 승리를 거두어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